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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대학 탐방]1년은 현장서 실습… 선진국형 ‘4+1학년제’ 국내 첫 도입

[세계로… 미래로 2013 대학 탐방]1년은 현장서 실습… 선진국형 ‘4+1학년제’ 국내 첫 도입[각주:1]

중소기업과 산학협력 산학협력 선도대학인 한양대 에리카 캠퍼스는 학생들에게는 다양한 현장실습 기회를, 기업에는 대학의 우수한 인프라 활용 기회를 주고 있다. 사진은 에리카 캠퍼스의 값비싼 실험 장비를 인근 중소기업 관계자들이 활용하는 모습. 한양대 제공


경기 안산시에 있는 한양대 에리카 캠퍼스는 올해부터 특이한 학사제도를 도입한다. 이름도 생소한 ‘선택적 5년제’ 프로그램으로 ‘4+1’ 프로그램이라고도 부른다. 국내 최초로 원하는 학생에 한해 대학을 5년간 다니도록 설계한 것이다.


‘아니, 4년제 대학을 5년제로 운영한다고?’라며 의아하게 여기는 이도 많을 듯하다. 하지만 이미 미국 명문 공대 중 상당수가 도입한 제도다. 학교가 학생들에게 1년간 현장실습 기회를 보장해줌으로써 취업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시스템이다.


○ 허송세월은 그만

요즘 4년제 대학을 4년 만에 졸업하는 학생은 거의 없다. 스펙 쌓기 경쟁이 심해지면서 어학연수나 교환학생은 필수요, 토익이나 자격증 준비를 이유로 1년 넘게 휴학하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투입한 것에 비해 실제 취업시장에서의 평가는 낮다. 기업은 여전히 ‘쓸 만한 인재가 없다’고 투덜댄다.

한양대 에리카 캠퍼스는 이런 현실에 착안했다. 대학의 이론중심 교육과 기업이 원하는 실무능력이 동떨어져 학생들이 피해를 보는 점을 개선하기 위해 나섰다. 그 고민의 산물이 바로 선택형 5년제다.

올해 1학기부터 에리카 캠퍼스는 5학기 이상 이수한 학생 중 희망자에게는 1년 동안 현장실습을 하도록 뒷받침한다. 올해 신입생부터 적용되지만 기존 재학생도 원한다면 이번 여름방학부터 시범적으로 도전할 수 있다.

에리카 캠퍼스가 지원하는 현장실습은 평범한 인턴십과는 차원이 다르다. 대학생들이 각자 희망하는 기업에 지원해 몇 주 정도 맛만 보는 방식이 아니다. 에리카 캠퍼스가 발로 뛰어 찾아낸 우량 기업에서 1년 동안 정규 직원과 똑같이 일하며 진짜 사회생활을 배우게 된다. 원칙은 1년이지만 부득이한 개인 사정이 있다면 6개월만 도전할 수도 있다.

에리카 캠퍼스는 기업 섭외부터 입사 지원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걸쳐 세심하게 학생들을 돕는다. 학교가 전용 사이트를 만들어 기업 정보 및 구인 현황을 수시로 업데이트한다. 이 사이트만 보면 기업의 현황, 급여와 복지 수준, 원하는 인재상 등을 한눈에 알 수 있다. 학생 개개인의 지원서도 학교가 관리한다. 학교가 정한 형식에 맞춰 자기소개서와 경력사항 등을 한 번만 등록해놓으면 어느 기업에 지원하든 계속 활용할 수 있다.

학생이 현장실습을 하는 기간에 기업은 근무실적을 평가하고 학교에 평가서를 주기도 한다. 학교도 수시로 학생의 근무상황과 애로사항 등을 점검한다. 1년이 지나면 근무실적에 따라 최대 10학점까지 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렇게 알차게 보내는 1년 동안 등록금은 한 푼도 내지 않는다. 오히려 학생들은 기업에서 적잖은 급여를 받을 수 있다. 통상 월 100만∼150만 원 정도. 1년 동안 모으면 2개 학기 등록금과 연간 생활비를 마련할 수 있는 큰돈이다. 선택형 5년제 과정을 설계한 김우승 산학협력선도대학(LINC) 사업단장은 “1년 동안 현장실습을 하면 4학년 학비보다 많은 돈을 벌 수도 있다. 사실상 3년 치 등록금으로 대학 5년을 마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 축적된 인프라의 힘

에리카 캠퍼스가 이 제도를 도입할 수 있었던 배경은 10년 전부터 구축해온 인프라 덕분이었다. 아무리 대학이 학생들을 현장에 내보내고 싶어도 이를 받아주는 기업이 없으면 불가능한 노릇이기 때문이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선정한 산학협력중심대학인 에리카 캠퍼스는 2004년 LINC 사업 전담직원을 가동해 인근 기업을 하나하나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방학을 활용해 생생한 현장실습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해주겠다는 취지에서다.

다른 대학들은 계약직으로 뽑는 LINC 직원을 정직원으로 3명 채용한 것부터 남달랐다. 이들은 쓸 만한 기업을 찾아다니며 “뛰어난 학생을 골라 보낼 테니 방학 동안 믿고 써달라”고 읍소했다. 이런 일을 처음 겪어본 기업들은 문전박대하기 일쑤였다. 기업들이 하나둘 관심을 보이고 실제로 학교에서 소개받은 학생들이 일을 잘한다는 소문이 나면서 여기에 참여하는 기업이 급속도로 늘었다.

초창기에 시행한 방학 중 현장학습 프로그램은 2004년 39개 기업에서 139명이 참여했던 것이 2012년에는 250개 기업에서 860명이 참여할 정도로 자리를 잡았다. 서울과 경기 지역을 가릴 것 없이 국책 연구소, 대기업, 내실 있는 중소기업, 벤처기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업이 현장실습 기회를 제공한다. 학생들이 전공과 장래 희망에 딱 맞는 기업을 골라 실무형 훈련을 할 수 있는 비결이다.

이 기업들은 선택형 5년제 프로그램에도 적극 참여할 예정이다. 잠시 왔다 떠나는 인턴과 달리 1년 동안 제대로 일할 인력이 온다는데 마다할 기업이 없다. 특히 구인난에 시달리는 중소기업들은 에리카 캠퍼스의 선택형 5년제 프로그램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이런 교류를 통해 예상치 못한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바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중소기업, 즉 ‘히든 챔피언’의 재발견이다. 한양대 산학협력단 관계자는 “학생들이 실습 경험을 인터넷에 올리고 공유하는 과정에서 정말 좋은 중소기업들에 대한 입소문이 나고 있다. 막연히 대기업만 선호하던 학생들이 먼저 참여한 학생들의 조언에 따라 알짜 중소기업을 찾아가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에리카 캠퍼스의 선택형 5년제 프로그램이 자리를 잡으면 1912년 시작된 미국 조지아텍코업(Cooperative Education) 못지않은 성공을 거둘 것으로 기대된다. 조지아텍은 전 세계 3200개 기관과 협약을 맺고 4개의 현장학습 프로그램을 가동해 학생들이 최소 3학기 동안 현장실습을 하도록 지원한다. 2011년 학부생 1619명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해 총 1500만 달러(약 159억 원) 이상을 받으며 실무 감각을 길렀다.

김 단장은 “취업난으로 고통받는 학생들을 위해 에리카 캠퍼스가 획기적인 시도를 하는 것”이라며 “다른 대학들도 이런 프로그램을 시도할 수 있도록 에리카 캠퍼스가 10년간 쌓은 노하우를 적극적으로 전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임덕호 한양대 총장은 에리카 캠퍼스를 세계 최고의 산학협력 모델로 키우겠다고 다짐했다. 한양대 제공

 “길러진 인재를 쓰기만 하는 기업들 무임승차 이제 그만” ▼

■ 임덕호 한양대 총장

“선진국에서는 기업들이 대학의 인재 양성에 공동으로 참여합니다. 이제 우리 대기업도 길러진 인재를 쓰기만 하는 ‘프리 라이더(Free Rider·무임 승차자)’가 되면 안 됩니다.”

에리카 캠퍼스의 선택적 5년제 도입을 주도한 임덕호 한양대 총장은 청년 실업을 극복하고 우수한 산업인력을 키우려면 기업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업이 생생한 현장학습 기회를 주지 않으면 결국 산업체가 원하는 인재가 나올 수 없다는 말이었다.

임 총장은 2011년 미국 드렉슬공대를 방문했을 때 충격을 받았다. 산학협력이나 인턴십이라면 에리카 캠퍼스가 어느 학교에도 뒤지지 않는다는 자부심이 넘치던 그였다. 하지만 드렉슬공대의 완벽한 4+1 제도를 보고 말문이 막혔다. 모든 학생이 재학 중 1년간 현장실습을 하고 졸업 후에는 대부분 현장실습을 한 기업에 취업하는 방식이었다.

임 총장은 한국에도 이런 제도가 꼭 필요하다고 느꼈다. 기업이 학생을 받아주고 또 가르쳐주지 않으면 불가능한 제도라는 게 문제였다. 그는 “다행히 우리는 10년 가까이 발로 뛰어 현장실습 기업을 확보해온 덕분에 금세 선택적 5년제를 시도할 수 있었다. 다른 대학들은 이를 하고 싶어도 학생을 보낼 기업이 없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임 총장은 “미국 유수의 대기업들은 대학생들에게 실질적인 업무 경험을 쌓도록 문호를 개방하고 적극적으로 지도해준다”라면서 “우리도 좋은 시스템을 갖춘 대기업들이 현장실습 기회를 많이 제공해서 대기업은 물론이고 중소기업에도 우수한 인재를 보내야 한다. 이것이 기업의 사회적 역할”이라고 지적했다.

임 총장은 지난해 9월 사립대총장협의회 정기총회를 에리카 캠퍼스로 유치했다. 그는 유치 이유로 “대학생들이 졸업을 미뤄가며 취업에 도움도 안 되는 스펙을 쌓느라 돈을 많이 쓰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대학이 이런 학생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처음엔 서울이 아니라며 싫어하는 총장도 일부 있었다. 에리카 캠퍼스의 현장실습 광경을 둘러본 뒤에는 반응이 완전히 달라졌다. 시스템을 벤치마킹하겠다며 직원을 견학 보내거나 에리카 캠퍼스 교직원을 초빙하는 학교가 줄을 이었다.

임 총장은 한양대 역사상 최초의 에리카 캠퍼스 교수 출신 총장이다. 그만큼 에리카 캠퍼스를 속속들이 알고 애정도 많다. 그래서 서울과 에리카 캠퍼스를 완전히 분리해 특성화를 추구하고 있다. 그는 “서울은 연구 중심, 에리카는 산학협력 중심으로 키우기 위해 교수 업적평가 방식까지 바꿨다. 에리카는 교수 업적 평가의 50% 이상을 산학협력 실적으로 평가한다”고 귀띔했다.

임 총장은 “200개가 넘는 4년제 대학이 똑같은 잣대로 경쟁하면 발전이 없다”라면서 “에리카 캠퍼스를 산학협력의 최고 롤 모델로 만들고 이를 통해 학생들이 경쟁력 있는 인재가 되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다짐했다.



에리카 캠퍼스는 국내 산학협력의 최고 롤 모델이며, 앞으로 그러할 것이다.




  1. http://news.donga.com/3/all/20130122/52485725/1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