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중앙일보 올해 대학평가는 전국 4년제 대학 100곳(지난해 102곳)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중앙일보 대학평가는 지난해와 유사한 평가 틀과 배점을 유지했다. 그럼에도 상위권 대학 간의 순위 바뀜이 두드러졌다. ‘글로벌 대학’을 향한 대학들의 치열한 경쟁 때문이다.
교수연구(100점), 교육여건(90점), 평판·사회진출도(60점), 국제화(50점) 등 4개 부문 점수를 합산(총점 300점)했다. 온라인 시스템을 통해 각 대학으로부터 자료를 받았다. 특허청·한국교육학술정보원·한국연구재단 등이 분석한 연구실적 자료는 해당 대학들의 검증 과정을 거쳐 평가에 반영했다.
올해 중앙일보가 사용한 평가지표는 총 31개다. 해외 유수의 대학평가보다 더 많은 요소를 활용했다. 세밀하고 실증적인 지표를 통해 대학의 ‘간판’보다 현재의 실력과 교육·연구여건 등에 주목하기 위해서다. 영국의 대학교육전문매체 ‘THE’가 발표하는 세계대학평가는 교수당 박사학위 수여자 등 13개 지표, 미국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의 미국대학평가는 입학생 수능성적(SAT) 등 18개를 사용한다.
올해 처음 본·분교를 분리 평가한 한양대 서울 캠퍼스는 종합 순위 7위, ERICA 캠퍼스는 12위에 각각 올랐다. 서울 캠퍼스는 해외로 파견한 교환학생 2위, 외국인 교환학생 5위로 국제화 부문이 뛰어났다. ERICA는 교수 1인당 특허 등 지적재산권 수가 4위로 산학협력에 강점을 보였다.
올해 대학평가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중앙일보 대학평가 홈페이지(univ.joongang.c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1994년 첫선을 보인 중앙일보 대학평가는 한때 변화에 둔감했던 국내 대학들이 ‘선의의 경쟁’을 하는 촉매가 됐다. 지난 20년간 대학 사회의 개선은 본지가 채택한 각종 지표로 확인할 수 있다. 전임교원 1명당 학부생은 94년 30.2명에서 올해 21.5명으로 줄었다. 학생 1인당 장학금은 16만원에서 202만원으로 늘었다.
연구력 향상도 눈에 띈다. 중앙일보는 95년부터 SCI(과학기술논문색인) 논문을 평가에 본격 도입했다. 당시 이공계 교수 한 명당 SCI 논문이 1편을 넘긴 학교는 KAIST(2.2편)밖에 없었다. 하지만 올해 전국 100개 대학의 이공계 교수 1인당 SCI 논문이 평균 2.89편으로 나타났다. 20년 전 교수 1인당 640만원에 그쳤던 연구비는 8320만원으로 늘었다. 노건일 한림대 총장(전 인하대 총장)은 “중앙일보 평가는 대학들이 경쟁을 통해 교육 여건을 개선하고 연구력을 높이는 데 커다란 기여를 했다”고 말했다.
대학평가에서 순위가 오른 대학들은 총장의 지도력, 부단한 개혁, 전폭적 투자라는 공통 분모가 있었다. 한때 30위 밖에 머물던 전북대는 올해 사상 처음으로 종합순위 19위에 올랐다. 2006년 취임한 서거석 총장(대학교육협의회장)의 리더십이 큰 몫을 했다. 그는 취임 이듬해 교수 승진 요건을 국립대 최고 수준(14편·주저자 기준)으로 강화했다. 정년이 보장된 교수도 최소 2년마다 1편의 논문을 쓰도록 해 ‘교수=철밥통’이라는 인식을 깼다. 2009년엔 국제 논문 증가율이 전국대학 중 1위(39.4%)를 기록했다. 학내 소통에도 능한 서 총장은 국립대 총장으로는 드물게 직선제를 통해 연임을 했다.
동국대는 2005년 본지 평가 순위가 44위까지 떨어졌다. 2007년 취임한 오영교 전 총장은 교수 강의평가 결과를 교수·교직원은 물론 학생에게 공개했다. 실시간 온라인 시스템을 통해 학과의 논문·연구비를 파악해 목표를 제시했다. 김희옥 현 총장은 2011년 ‘제2 건학’을 선언했다. 교수 업적에 따라 보수를 결정하는 연봉제를 도입했다. 매주 목요일 교수와 오찬을 함께하고, 매달 ‘총장과의 데이트’를 열어 학생을 만나는 등 소통을 강화했다. 학교의 변화 노력에 동문·종단의 도움이 이어졌다. 2008년 2200명이던 기부자가 지난해 6500명으로 늘었다. 동국대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역대 최고인 13위를 기록했다.
아주대는 1994년 국내 최초로 학부제를 실시하고 교수 업적평가를 실시한 대학 개혁의 선두 주자였다. 하지만 외환위기로 모기업인 대우가 몰락, 재단의 재정 지원이 줄면서 한때 20위(2001년)까지 떨어졌다. 어려움 속에도 아주대는 개혁을 멈추지 않았다. 2007년부터 정년이 보장된 정교수 직급을 4단계로 구분, 단계마다 연구업적을 쌓도록 유도했다. 올해 한 계단 상승한 15위에 올랐다.
경희대는 국제화를 개혁의 키워드로 삼았다. 이 학교는 현재 전임교원의 10%(148명)가 외국인이다. 슬라보예 지젝(정치학·슬로베니아), 올리버 윌리엄스(경영학·미국), 램 크란(사회학·미국) 등 해외 석학들과의 공동 연구도 활발하다. 유엔과 대규모 학술대회 등을 개최한다. 경희대는 본지 평가에서 올해 국제화 부문 2위를 기록했다. 경희대는 학교의 희망에 따라 한양대·중앙대 등과 달리 본·분교를 분리해 평가하지 않았다.
건국대는 2001년만 해도 30위에 머물렀다. 그러나 2000년 시작한 학교 남측부지 개발 사업(스타시티)이 수익을 내면서 학교법인이 2001년부터 매년 평균 238억원을 학교에 투자했다. 풍부한 지원을 바탕으로 건국대는 2005년 605명이던 교수 수를 올해 1123명까지 늘렸다. 교육여건 개선에 성공한 건국대는 올해 평가에서 16위에 올랐다.
2008년 두산이 경영 참여를 한 중앙대도 체질 개선에 나섰다. 중앙대는 도서관·기숙사를 늘려 학생 교육여건을 개선했고 졸업요건 기준을 높이고 엄격한 상대평가로 학점을 준다. 이 학교는 올해부터 교수를 연구성과에 따라 네 등급으로 평가하고, 결과를 연봉과 연동했다. 2002년 16위까지 떨어졌던 중앙대는 올해 종합순위 8위를 기록했다.
서울과학기술대(옛 서울산업대)는 지난해 일반대로 전환하면서 2020년까지 국내 10대 대학 안에 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가장 필요한 건 교수들의 연구력 강화였다. 서울과기대는 지난해부터 모든 교수가 한국연구재단 등재 학술지에 매년 2편 이상의 논문을 쓰도록 의무화했다. 대신 논문 한 편당 연구비 350만원을 지원했다. 외부 연구과제를 따오는 교수에겐 인센티브를 주고 승진에 반영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서울과기대는 국내논문 순위가 지난해 88위에서 올해 11위로 크게 올랐다. 같은 기간 종합순위는 32위에서 23위로 9계단 뛰었다.
올해 평가에선 서울과기대·한국기술교육대·서울여대·단국대 등이 지난해보다 대폭 성장했다. 한국기술교육대(26위→22위)는 교육여건 개선에 공을 들였다. 이 학교는 지난해(5.3% 인하)에 이어 올해도 등록금을 1.3% 내렸다. 반면 교내 장학금은 2011년 25억원에서 지난해 36억원으로 40% 이상 늘렸다. 갑작스럽게 형편이 나빠져 학업이 어려운 학생에게 등록금과 생활비를 주는 ‘신문고 장학금’도 신설했다. 한기대는 올해 교육여건 부문 순위가 25위에서 4위로 상승했다.
서울여대(49위→40위)는 지난해부터 연구성과가 뛰어난 교수를 연구집중교수로 지정해 수업 부담을 주당 9시간에서 6시간으로 줄였다. 대신 교육에 열의가 있는 교수들은 강의전담교수로 선발해 주당 12시간씩 강의를 맡겼다. 이런 ‘분업화’ 덕에 교수연구 부문 순위(지난해 66위→올해 33위)가 큰 폭으로 뛰었다. 단국대(47위→36위)는 국제화에 집중적으로 투자했다. 2008년 0.6%에 불과하던 외국인 교수 비율이 지난해 6.4%로 10배로 늘어났다. 또 2007년 캠퍼스를 경기도 용인으로 이전하면서 16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기숙사를 지어 외국인 유학생 등 희망하는 학생은 대부분 수용할 수 있는 인프라도 갖췄다.
올해 대학평가에선 위기를 기회로 바꾼 대학들의 노력이 돋보였다. 학내 구성원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총장·교수들이 솔선수범하며 대학의 체질을 바꿨다. 이 대학들이 겪은 시련은 학교가 더 높이 뛰어오르게 하는 발판이 됐다.
지난해 8월 국민대 유지수(61) 총장은 “1년 안에 학교를 정상화하지 못하면 사퇴하겠다”며 배수진을 쳤다. 국민대가 교육부 평가에서 정부 예산을 받지 못하는 재정지원제한대학으로 선정되면서다. 예체능계 비중이 높아 취업률이 낮게 나온 게 주원인이었다.
당시 총학생회는 이사회와 총장의 사과를 요구했다. 총동문회는 “학교가 투자에 인색했다”고 질타했다. 취임 5개월째이던 유 총장은 자신의 진퇴를 걸고 동요하던 교직원·동문을 안심시켰다. 매달 30여 명의 기업 인사부장·과장을 만나 학교 상황을 설명하고 의견을 들었다. 유 총장은 “총장이 직접 실무자를 만나 열의를 보이자 졸업생에 대한 기업의 신뢰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담당 교수가 학생의 입학부터 졸업까지 책임지는 취업멘토 교수제를 도입했고 취업 특강·컨설팅도 수시로 마련했다. 동문 기업인 70여 명과 ‘국민 CEO클럽’을 만들어 후배를 채용하는 캠페인도 벌였다. 그 결과 국민대는 전국 100여 개 대학 중 85위(49.3%)에 그쳤던 취업률이 올해 32위(58.7%)로 올랐다. 지난 8월엔 재정지원제한대학에서 제외됐다. 국민대는 본지 평가 결과 종합순위 24위(지난해 31위)에 올랐다.
세종대 신구(56) 총장은 취임 한 달 만인 지난해 8월 대학이 재정지원제한대학에 선정되자 교육여건 개선에 집중했다. 지난해에만 교수 65명을 영입했다. 학생 장학금(163억원→248억원)도 크게 늘렸다. 봉사활동 동아리인 ‘세종나누리’와 ‘세종나눔봉사단’을 창단해 학생들에게 나눔과 인성을 강조했다. 신 총장은 “학생들이 배려와 협동의 가치를 배우면서 기업·사회에 꼭 필요한 인재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학과마다 취업담당 교수를 두는 등 실질적인 조치도 병행했다. 1년 만에 재정지원제한대학이라는 불명예를 벗은 세종대는 본지 평가에서 종합순위(40위→26위)가 껑충 뛰었다. 취업률(93위→26위)과 평판도(44위→37위)가 순위 상승을 이끌었다.
부산대는 2년 연속 순위(23→19→18위)가 상승하며 지역거점 국립대 중 선두에 올랐다. 이 학교는 지난해 총장직선제 폐지를 놓고 갈등을 겪었다. 전임 총장은 뇌물 수뢰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지난해 2월 취임한 김기섭(56) 총장은 구성원들과의 소통을 통해 위기와 갈등을 풀어갔다. 그는 “전체 교수회의, 학과장회의 등을 정례화해 교수의 의견을 듣고,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부산대는 국내논문 전국 2위(지난해 4위)를 기록했다.
상명대는 학생 눈높이에 맞춘 정책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2011년 재정지원제한대학이 된 상명대는 교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연봉 일부를 학교에 기부해 등록금을 7% 내렸다. 총장이 직접 단과대별 취업률을 챙기고 3주마다 학과별 현황과 계획을 발표했다. 지난해 60위였던 상명대는 올해 43위로 올랐다. 지난 9월 취임한 구기헌 총장은 “수요자 중심 교육을 더욱 강화해 학생이 오고 싶어하는 대학을 만들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