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덕호 한양대 총장은 작심을 한 얼굴이었다. 지난 10일 한국경제신문 주최로 서울 힐튼호텔에서 열린 ‘스트롱코리아 창조포럼’의 벤처 창업활성화 대토론회. 토론자로 나선 임 총장은 마이크를 잡자마자 한탄부터 했다. “도대체 주요 신문들이 똑같은 잣대로 대학을 줄 세우는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그의 불만은 획일적인 대학 평가기준이었다. “기존 대학 평가는 국제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급 논문 등 연구실적만 반영합니다. 창업프로그램 같은 건 평가 항목에도 없어요. 제대로 된 창업교육을 하는 학교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창업교육에 열심인 한양대는 대학 평가순위에서 늘 10위 안팎으로 뒤처진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대학 순위가 신문에 발표되면 동문들로부터 전화가 빗발칩니다. ‘총장님, 왜 이런 겁니까?’ 정말 속상해요.” 임 총장은 창업교육을 아예 포기할까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창업교육 좌절시키는 대학평가
한양대는 주요 대학 중 대표적으로 창업교육에 열성적인 곳이다. 이 대학은 2009년 창업교육을 전담하는 ‘글로벌기업가센터’를 설립했다. 이곳의 교수 17명은 모두 기업인 출신으로 뽑았다. 공대생은 이 센터에 개설된 ‘테크노경영학’ 과목을 3학년 때 필수로 들어야 한다. 또 ERICA(안산) 분교에서는 학제 간 융합과정으로 ‘특허와 협상’이란 과목을 만들었다. 창의적 아이디어를 가진 디자인학과 학생, 그 아이디어를 제품화할 공대생, 마케팅을 맡을 인문·사회계열 학생을 한 팀으로 묶어 한 학기를 운영한 결과 모두 10개 팀에서 20개의 개념특허가 나왔다고 한다. 이런 성과에도 대학 평가에선 대접을 못 받고 있으니 임 총장이 화가 날 만도 했다.
창조경제의 핵심은 벤처 창업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시스템은 창업 친화적이지 않다. 논문 위주의 대학 평가도 그렇지만, 출연연구소에 대한 정부의 연구개발(R&D) 자금 지원도 마찬가지다. 정부 R&D 자금은 전년도의 과제 성공률에 비례해 배분된다. 성공률이 높아야 돈을 더 받는다. 연구원들은 당연히 사업화에 꼭 필요하지만 어려운 과제보다는, 성공하기 쉬운 연구에만 매달린다. 정부 지원 R&D 성공률은 95%로 세계 최고지만, 사업화율은 20%로 영국(70.7%) 미국(69.3%) 일본(54.1%)에 한참 떨어지는 이유다.
벤처창업 막는 시스템 바꿔야
최근 우후죽순처럼 생긴 창업공모전도 그렇다. 현재 10여개가 넘는 창업공모전은 대부분 아이디어와 비즈니스 모델만 평가한다. 기술 검증이나 사업화 의지는 따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프레젠테이션에 뛰어난 대학생들은 이 대회, 저 대회 기웃거리며 상금 따먹기에 열을 올린다. 입상 경력을 스펙으로 쌓아 삼성전자에 취직하겠다는 학생도 태반이다. 이런 학생들을 가리키는 ‘창업대회 쇼핑족’이란 말까지 나왔다.
물론 모든 대학이 창업교육에 집중하고, 출연연구소도 사업화에만 몰두하고, 대학생은 창업만 하란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창업을 원천적으로 막거나 방해하는 시스템은 걷어내야 한다.
‘창조경제’ 붐으로 벌써 벤처 거품을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거품은 창업 생태계 시스템이 제대로 안 갖춰져 있을 때 생긴다. 왜곡된 시스템에 돈만 넣으면 생기는 게 거품이다. 벤처 생태계가 선순환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면, 돈은 그야말로 벤처를 살리는 자양분이 된다. 벤처 창업 지원을 말하기에 앞서 다양한 대학 평가와 R&D 자금 배분 등 시스템부터 정비해야 한다. 임 총장이 창업 교육을 포기해선 벤처도, 창조경제도 꽃필 수 없다. 1
학생들이 창업을 원천적으로 막거나 방해하는 시스템을 걷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학교가 되어야 한다
-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3062360371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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